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Maggot baits/스토리 (문단 편집) === 재와 다이아몬드 === '인간은 살아가는 의미를 일상에서 의식하기에, 삶을 견디려 인식이라는 무기를 가진다. 인식의 눈으로 보면, 세계는 영구히 불변이며, 그대로 세계는 불변인 채 영구히 변모한다.' 츠누가는 과거 독서를 좋아한 SAT 동료에게 들었던 '금각사(金閣寺)'의 구절을 떠올린다. 앞의 말에 대해서, '인식' 따위로 세계는 변하지 않으며, 세계를 바꾸는 것은 비로소 '행위'라는 반박이 책의 다음 대목에서 행해진다. 츠누가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행위라고 생각하면서도 캐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정정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캐롤과 맞닿은 츠누가는 이룰 수 없는 소원을 하나 떠올린다. 스스로 위험에 들이고 있는 츠누가는 생존본능으로서 캐롤에게 자신이 살아있던 증거를 남기려 했다. "마녀"는 인간의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마음만은 이룰 수 있다는 듯 둘은 기원을 바쳤다. ---- 츠누가의 은신처를 습격한 브라이언이 이끄는 '마녀사냥' 부대의 전멸 후, "마녀" 지원 병력이 뒤늦게 도착한다. 산디는 캐롤과 위르마를 간단히 쳐부수고 신체의 내장을 바닥 여기저기에 퍼뜨리는 등 일 대 다수의 전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드러낸다. 그 사이 브라이언은 츠누가와 염원하던 결투를 벌였다. 츠누가는 부상을 입고 숲속까지 브라이언을 끌어들이지만, 탄을 복부에 여러 차례 맞고 팔 하나를 잃는 등 초주검의 상태가 된다. 츠누가가 브라이언에게 가한 치명적인 부상은 요저를 몸에 들인 경이적인 회복력으로 피해를 누적시키지 못했다. [anchor(2)] ||총성이 반복해 밤의 숲을 울리는 가운데, 치명상을 입었음이 분명한 브라이언이 일어서 집요하게 반격을 거듭한다. 그의 이상(異常)적인 터프함은, 사법가의 요저를 육체에 심는다고 하는 상궤를 벗어난 조치에 비롯된 것이었고, 극한까지 육체를 단련하여 냉철한 살인술을 닦은 츠누가도 점차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런데도 눈동자로부터 투지의 불꽃을 거두지 않는 숙적에게, 브라이언은 차가운 빛을 품은 채로 말을 건넨다. "이봐, 츠누가… 우리 두 명, 짓궂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나?" "너는 전 경찰관. 나는 전 테러리스트 출신 범죄자. 같은 하늘 아래에 있을 수 없는 적끼리다. 그런데 한데 모여 추락한 앞은, 이와 같은 사법가… 반대 측에 있었을 터인데, 상당히 이상한 도행(道行)이 아닌가." "너 또한, 자신의 제일 소중한 것을 버리고 온 것일 터. 그게 아니면 빼앗겨 버린 건가?" "신념, 긍지, 희망, 우정… 그런 것이라면 나에게도 있었다. 한때, 이것만은 놓치지 않겠다고 맹세한 인생의 양식(糧)이. …하지만 그런 것에 한해서, 잃을 때는 한순간이다." 그에 대해, 항상 냉철하게 행동해 온 남자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내몰려, 반격과 함께 브라이언의 말을 부정하려 으르렁거린다. 어떤 과거도 장황한 말도, 지금의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것.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한탄은 하지 않고, 미래 따위의 찾아올 리가 없는 것 역시 바라지 않아야만 했다. 그러나, 브라이언은 그의 가슴 속에 숨겨진 마음을 간파한 다음, 그 의식으로 태어난 틈을 찔러, 필사의 반격도 체외에 성장하는 촉수를 통해 분쇄. 단련되었으나 인간의 범주에 머무르는 츠누가의 육체를 철저히 파괴한다. 고경(苦境)에 쫓겨 나가면서도, 그런데도 남자는 일어서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네가 실제로 그 눈으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만, 하나만 들려줘라. 그렇게 발버둥 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다. 너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가?" 가로막는 적에게, 상처 입은 짐승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며, 무겁게 수긍을 돌려준다. 그 대답에, 이형을 품은 용병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이제 그것밖에 없다. 긍지를 위해서라던가, 누구를 위해서라던가… 그런 동기를 편린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무엇도, 처음부터 겉치레-\-아름다운 일에 등을 돌려온 것은 아니다… 힘을 냈던 거다. 그 나름대로. 너도 그렇겠지? ----하지만 결과는 이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 이건, 요컨대 그만큼의 이야기다." 말하는 언어는 조용한 채, 그러나 미칠 듯한 열기를 계속 띄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아직 끝낼 수는 없어. 그런 볼썽사나운 꼴을 드러내놓고도 멈추지 않는 발버둥질이,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라니 참을 수 있을까----" "…정말, 잘도 말하는 남자군." 그가 하는 말을 입 다물고 듣고만 있던 츠누가는, 상처가 가져오는 열기에 들뜬 의식이 그렇게 시켰는지, 사신인 듯한 백인으로부터 느끼는 것이 있는지, 고통의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네놈의 거울이 나라고 말하려 한다면, 더더욱 문답 따위는 소용없을 터다. 자신의 동류 따위, 신물이 달릴 뿐의 존재겠지만. 한 조각의 인정사정도 없이, 짓밟아 부숴주면 그것으로 족해… 틀렸나?" 처절한 웃음을 띄워. 아명(牙鳴)에 삐걱거리는 듯한 소리로 츠누가는 내뱉는다. 브라이언 막쿨은 그 반환에 눈을 부라리며, 말을 뽑아낸다. "나는, 너라는 남자를 지워버리고 싶어 견딜 수 없다… 절망을 맛보게 한 뒤 죽여 시체를 범해, 침과 정액을 뱉어 존재 자체를 짓밟아 주고 싶다. 그저 그것만으로 끝나는 이야기인데, 이러쿵저러쿵 쓸데없는 일을… 하, 나한테도 아직 그런 인간내나는 귀염성이 남아 있었을 줄이야." 그의 가라앉은 얼굴은, 평소와 같은 시든 늪을 연상케 하는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서 버리고 간다. 이 손으로,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부숴버리는 것으로 말이야." 그리고, 남자들 사이의 공기는 결착을 향해 극한으로까지 긴장되고, 교착(交錯)하는 순간, 월하의 숲에 짐승의 포효와, 사냥꾼의 총명(銃鳴)이 울려 퍼졌다.|| ---- 7년 전, 카네무라 토우코(歌音邑 瞳子)는 평화로운 나라의 나름 유복한 가정에 사는 소녀로서 어떤 괴로운 일이 있더라도 밝은 자세를 견지해 세계의 화목한 부분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그런 한결같은 모습은 어른들에게는 호감을 샀으나 주위 사춘기 또래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날을 기점으로 토우코의 세계는 일변한다. 낯선 장소에 납치되어 감금된 토우코는 자신과 같이 세계 각지에서 끌려온 소녀들을 보게 된다. 패닉에 빠지거나 울음을 터뜨린 소녀들을 북돋기 위해 토우코는 무리해서라도 상황을 진정시키려 했다. 토우코는 메이요우(美友)의 시계를 보고 힌트를 얻어 주위의 소녀들이 대부분 유복한 가정의 태생임을 알고 몸값 지불을 노린 것으로 추리했다. 안나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울분에 찬 반박을 내놓았지만, 토우코의 의견을 소녀들이 지주로 삼던 테레이제가 지지했다. 스스로 독일에 살던 수녀 테레이제 하이네만(テレーゼ・ハイネマン)으로 소개한 그녀는, 자신의 사례-\-변두리 창부의 사생아로 태어난 빈곤한 삶 가운데, 매일 밤 자신을 범한 양부로부터 도망쳐 수녀가 된 반례--를 알면서도 모두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편을 택했다. 테레이제의 품에 안긴 가장 어린 중동 태생의 공주 나우라(ナウラ)에게도 토우코는 확언했다. '겉치레(綺麗事)'는 각각의 사람들이 믿는 것으로 현실로 만들어 나가야만 한다. 상냥함이나 이웃을 돕는 것을 상상으로 해 단념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가 행하는 일이기에. 그런 토우코의 옆에서 테레이제는 로자리오를 쥐고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만일 그녀들에게 수난이 닥친다면 가장 먼저 자신을 희생해달라고 부탁하며. 시몬은 자신이 섬기는 "무명의 마녀"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발주 미스로 끌려온 테레이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순수함을 유지한, 가능한 신을 믿을 정도의 순수성을 요구했더니 아예 신을 섬기는 수녀를 데려와 버렸다며 난처해한다. 심지어 테레이제는 낙태 경험까지 있는 순결하지 않은 몸이었다. 어떤 기구한 과거를 두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절을 지킬 것이라는 "무명의 마녀"는 테레이제에게 특별한 역할을 맡기기로 결정했다. 수녀는 신이 아니라 신을 가장 증오하는 존재의 눈에 들어버린 것이다. ||"무명의 마녀"는 과거를 회상했다.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전 유럽에 퍼졌던 마녀사냥(말레우스 말레피카룸). 5만에서 6만의 희생자를 낳은 것으로 추산되는 인류사의 오점이었다. 그녀는 그것이 실제 마녀들을 궁지에 모는 목적을 완수했다고 밝혔다. 미천히 여겨지던 인간은 군중을 이루어 그늘 속의 지배자들을 학살했다. 후로도 미디어의 발달은 마녀를 비롯한 여러 존재들의 개념을 소비했다. 마녀는 인간으로서의 이름을 은닉해 세계의 법칙의 바깥에 몸을 둔다. 각각은 이명을 지니며 최후이자 유일의 마녀가 된 그녀는 '위신(偽神)' 얄다바오트로 불렸다. 그노시스 철학의 체계에 속했으나 그리스도교의 이단 교의에 흡수된 이름. 지금 세상의 이치를 정하는 신--예수 그리스도를 위신이라 여기는 그녀는 곧 위치를 역전해 스스로가 진정한 신으로 군림하려 한다. 얄다바오트의 이름은 가짜 신을 자칭한 자복(雌伏)의 때를 해학한 것이다. 그런 마녀를 바라보는 시몬의 눈에는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었어도 여전한 소년의 동경과 사모의 불길이 자리했다. A에서 Ω에 이르는 26개의 문자(게마트리아)는 삼라만상 모든 것을 구성하는 근원의 힘에 이르며, 수비술(数秘術)에서 그리스도교의 조물주(야하웨)를 상징하는 숫자였다. 용맥(レイライン)이 흐르는 이 토지에 용혈(ヴォルテクス)은 존재했다. 세계의 지배권을 탈취해 인과율을 고쳐쓰기 위해서는 예수가 신에 이른 길을 걸어야만 한다. 여자인 그녀가 사무치게 공감할 수 있는 절망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그리하여 악의에 짓밟히지 않은 순결한 영혼이 필요했다. 인지를 넘어선 어둠의 권세와 불사의 육체를 지닌 유일의 진정한 마녀. 그 몸을 26개의 길로 잇고 천한 것들의 유린으로 영혼을 비고(悲苦)와 애절(哀絶)의 규환(叫喚)을 연주시킨다. 지극히 도착적인 극한의 자학행위.|| 의식의 장소로 마련된 카죠우 시로 각국의 서버를 경유해 마녀의 야연의 개최를 고지했다. 준비된 제물을 범해, 죽여도 상관없다는 엽기의 연회. 사이트상에는 26명의 면면이 공개되어 있었다. 시몬은 여의치 않으면 자신이 태어난 중국 어딘가의 빈촌에서 인원을 수급할 예정이었지만, 불과 10여 일 만에 5000명이라는 수가 운집한 인세의 업을 느끼고 어두운 창작 의욕을 느꼈다. ---- ||광연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모두를 격려했던 용기와 사람의 상냥함을 믿는 마음, 토우코가 가슴에 내걸었던 그 이상마저도 색이 바래어 사라져갔다. 일찍이 그녀가 살아갔을 일상의 저편으로.|| ---- 폐허가 된 저택에 그로리아가 뒤늦게 나타난다. 상황을 파악하는 그로리아의 앞에 숨어있던 아리손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리손은 용기가 없어서 산디에 맞서지 못해 두 동료를 방치했고, 홀로 츠누가를 찾아 나설 용기도 없었기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리손을 제자로 여겼던 그로리아는 이를 꾸짖으며 홀로 산디에 맞설 것을 결의하고 아리손을 방치한 채 '슬럼 빌딩'의 벽면으로 돌격했다. 아리손은 스스로 비겁한 것을 알면서도 울음을 흘리며 츠누가를 찾아 나섰다. 그로리아는 산디를 찾으며 '슬럼 빌딩'을 거의 반파시키며 내부를 헤집고 다녔다. 곧 그로리아는 산디와 조우했고 산디는 '이번'에는 자신을 피해 다니는 겁쟁이가 아닌 '그로리아'를 칭찬했다. 의미불명의 칭찬에 그로리아는 불쾌해하며 산디와 접전을 펼친다. 배틀 액스를 위에서 짓누르는 우위를 점한 그로리아는 산디에게 절대적인 불리함을 강요했다. 승부의 추가 그로리아에게 기울지만, 건물이 파괴되며 격리실에서 기어 나온 요저들이 두 "마녀"의 기색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로리아는 본능적인 공포에 휩싸이지만 산디는 의도적으로 저런 것들에 접해왔다며 완벽히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너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기세가 완벽히 역전한다. 팔다리가 썰려 더는 전투를 속행할 수 없는 그로리아는 복부에 산디의 톱니 칼날이 박혀 일어날 수도 없게 된다. 산디는 그로리아를 완벽히 꺾어주겠다며 남성의 물건을 드러내 강압했다. 끝없는 폭행과 압력은 그로리아의 정신을 패퇴시켰고 한낱 소녀의 정신에 몰린다. 그로리아의 육체와 정신을 완벽히 굴복시킨 산디는 패배한 개에게 용무는 없다며 그로리아를 요저들의 사이에 방치한 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 츠누가와 함께 쓰러진 브라이언. 그는 츠누가가 결투 도중 "마녀"들의 전투에 한눈을 판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면서도 결국 사랑하는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며 고통 속에서도 일어나려는 츠누가를 보고 브라이언은 과거를 회상한다. 자신에게 소중했던 것. 고국 아일랜드의 얼스터 지방에 살던 그는 주위의 분위기에 떠밀려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에 가입했다. 무장 투쟁원은 아니었으나 관헌의 무차별적 탄압에 붙잡히고 말았다. 모진 고문을 견디며 동료들의 이름을 내놓기를 거부했지만, 출소 후 본 것은 동료들이 자신의 부인을 집단으로 범하는 광경. 유약한 그라면 분명 있는 것 없는 것 다 불었을 테니 애적에 배신자로 낙인을 찍었다. 배신자의 아내라면 무엇을 해도 괜찮을 터. 이성을 잃은 그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원을 죽였다. 후에 고문을 견뎌낸 의지를 높이 사서 아프리카로 건너가 본격적인 전투 훈련을 받지만, 동료 살해자라는 낙인은 영영 지워지지 않았다. 악명은 브라이언의 전적과 함께 커져만 갔고, 결국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브라이언은 츠누가에게 살아갈 길이 하나 남았음을 전한다. 그는 요저 세포를 이식하여 저주받은 삶을 이어나갈 것인지 묻는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캐롤의 곁에 가야만 한다는 츠누가의 의지. 자신이 자신의 의지대로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브라이언의 경고. 브라이언은 자신의 내장을 헤집어 꿈틀대는 요저의 조각을 꺼내 츠누가의 부상에 옮겼다. 세포는 츠누가의 속으로 기어들어가 끊어진 부분을 잇고 엮는 고통의 치유를 시작했다. 츠누가는 브라이언에게 작별을 건네며 자신은 곧 죽을 테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 전했다. 여전히 쓰러진 채 뒤를 전송하는 브라이언. 츠누가의 부상은 요저 세포 중에서도 말단부가 아닌 중핵 세포를 이식하여야 회복이 가능했다. 중심부를 잃은 요저 조직은 브라이언의 몸을 치유할 수 없었다. 브라이언은 어떤 식이든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 운명이라며 처절한 삶을 마무리했다. ---- 그로리아의 몸은 팔과 다리의 죽지부터 관절부까지의 위쪽 부분만 남긴 채 그 아래를 우각의 목발로 대체되었다. 코에는 뚜레가 끼어 식별표를 귀에 붙인 모습은 정진정명 인축 그 자체였다. 고통과 쾌감이 주어질 때마다 착유 설비의 내부가 물발로 요동쳤다. 위르마도 사정은 마찬가지. 오히려 더 잔혹했다. 인간의 언어를 잃고 돼지 목발을 한 채 꼬리와 연동된 기기를 끼워진 위르마. 탁액이 흘러내린 사료 그릇만 탐하는 텅 빈 존재가 되었다. 각각 임월에 임박해 복부를 불려 요저의 새끼를 품은 그 모습에 투쟁심과 지성의 편린은 온데간데없었다. 그 영락한 모습을 지켜보는 캐롤은 아연함을 숨길 길이 없었다. 모니터를 들이민 산디는 결국 "마녀"의 최후란 저런 것. 자신을 대신할 또 다른 '자신'을 낳은 뒤 폐기처분되는 그뿐인 존재라고 말한다. 탄생 이후의 기억을 모두 계승한 "마녀" 산디. 그것은 유일 최후를 맞은 적 없는 특수한 역할의 "마녀"임을 뜻했다. 캐롤은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얼마 전까지의 위르마의 모습을 기억했다. 산디는 "마녀"의 진실을 한 치의 거짓 없이 알려주기만 한 것으로도 무너졌다며, 오히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존재의 지속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캐롤의 몸도 수많은 유린이 가해졌지만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고통은 고통. 쾌감은 쾌감일 뿐이며 츠누가를 향한 마음 자체를 꺾을 수는 없었다. 산디는 아직도 부서지지 않은 캐롤을 무너뜨리기 위해 동료라 불렸던 인축의 모습을 들이밀기를 주저치 않고, 요저를 통한 고통과 열락의 고문을 끝없이 병행하였다. ---- 아리손은 숲속에서 츠누가를 찾아냈다. 츠누가는 아리손으로부터 캐롤의 행방을 비롯한 상황을 전해 들었다. 아리손은 늘 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의 죄악감을 덜기 위해 츠누가의 다리를 껴안았으나 본능적인 공포와 거부감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츠누가의 모습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지만 아리손은 그에게서 요저의 기색과 같은 무언가를 느꼈다. 다만 둘은 동행하여 목적지로 향했다. 그로리아와 바렌티노스의 폭풍이 불어닥친 '슬럼 빌딩'.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리고 외부의 침입을 막는 기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편. 둘은 혼란의 와중에 있는 빌딩 내부에 잠입했다. 이윽고 방비역의 아이린과 맞부딪혔다. "마녀"와의 전투를 위해 츠누가는 건물 내부의 방에 들어가 자신을 미끼로 삼고 아리손을 문 뒤에 대기시켜 기회를 노렸다. 아이린은 힘만을 믿고 날뛰는 타입의 "마녀"가 아니었다. 츠누가의 계략을 간파한 아이린은 뒤편의 아리손을 직접 시인하지도 않은 채 검을 휘둘러 아리손의 다리를 모두 절단했다. 무력화된 아리손을 남기고 아이린은 츠누가에게 맹공을 가했다. 츠누가는 간단히 아이린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절단된 오른팔로부터 기괴한 재생이 시작되었다. 고통에 찬 츠누가는 냉정과 이성을 모두 잃고 절규를 발했다. 곧 요저의 본능은 츠누가의 신체를 침식했고, 아이린은 츠누가의 이상을 느꼈으나 요저의 공포에 넋을 잃고 사지를 붙잡혔다. 아이린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완강히 거부했지만, 요저의 본능에 따르는 츠누가는 가혹함을 담아 아이린의 신체를 꿰뚫고 뒤틀었다. 숨이 멎어가는 아이린은 죽기 싫다고 외쳤다. 그런 끝에서, 아이린의 안의 목소리는 토우코와 테레이제를 찾으며, 이제 죽을 수 있다며 우리 모두가 죽음을 맞을 수 있는지 흐느끼며 신체의 절명과 함께 사라졌다. 아리손은 참상의 장면을 목격했다. 츠누가는 요저의 지각으로부터 되돌아왔지만, 아리손은 다음은 자기 차례일 거라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겁먹은 토끼처럼 도망가는 아리손의 등을 츠누가는 무언으로 전송했다. 부상을 입고 그 자리를 요저로 채워지는 불가역적인 변화를 자각하면서도 츠누가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를 더 중요히 여겼다. 분명 시몬을 매장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였을 텐데, 문득 눈치채면 다른 목적을 위해 행동하고 있었다. 그 남자를 살려둘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런 기묘함에 자조의 웃음을 흘릴 여유를 아직은 가지고 있었다. ---- * 세리카는 츠누가의 상황을 모른 채, 접선하기 전 사법가 어귀에 있는 집으로 돌아옴. 과거 세리카의 가정은 평범했으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얻은 보험금에 눈이 돌아간 세리카의 어머니는 호스트바에 다니며 흥청망청 돈을 쓰고 빚까지 지는 등 주부의 껍데기 아래의 본성을 드러냄. 독촉에 시달리던 모녀는 관동사법가로 흘러들게 됨. 세리카는 어머니를 죽일까도 생각했지만 스스로 지는 것이라 생각해 돈을 벌어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함. 그러나 세리카가 모아온 돈은 어느새 어머니가 몰래 써버리기 일쑤라 세리카의 계획은 진전이 더디었음. *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두 명분의 식사를 사서 돌아온 세리카 앞에는 어머니의 시체와 무뢰배들의 무리가 기다리고 있었음. 세리카는 그 일원에게 요저의 체액을 정제한 액체를 주사받고 범해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남자들의 비위를 맞추던 세리카는 볼 장 다 본 남자들의 폭력과 살해 욕구에 직면함. 그러나 갑자기 난입한 이고우의 도움으로 상황이 변함. 적들을 제압한 이고우는 세리카에게 이전처럼은 살 수 없겠지만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라며 총을 쥐여줌. 살려달라며 간원하는 원수. 방아쇠를 당긴 세리카로부터 츠누가의 대략적인 근황을 전해 들은 이고우는 그를 따라나섬. * 바렌티노스는 인류가 저마다의 이유로 뭉쳐 상대편에 대한 탄압과 폭력을 가해온 역사야말로 신의 의지이며 이것을 알아주지 못하는 자들에게 탄식함. 이제는 바티칸 내부에서조차 바렌티노스와 같은 신의 의지를 체현할 수 있는 자도 드물어졌다며, 신으로부터 허락된 폭력으로 '슬럼 빌딩'을 평정하며 시몬의 앞까지 다가감. 그리고 이자벨의 새로운 '모습'을 시몬에게 굴려 보냄. * 시몬과 바렌티노스의 대결. 전능한 신의 이름을 내걸은 바렌티노스에게 시몬은 그 신이 일만 확실히 했어도 '그 사람'이 묘한 착상에 물들 것도 없었다고 쓴웃음을 지음. 시몬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분. '누군가를 위해서' 라든지의 가식은 신용할 수 없고, 이놈도 저놈도 무화과의 잎으로 자신의 추악한 욕망을 숨기고자 한다며 흉악한 일물(一物)을 드러내기를 주저치 않은 츠누가에 감명을 받음. 바렌티노스는 사마리야의 시몬을 참칭한 마녀의 제사장에게 할렐루야의 함성와 함께 주먹을 뻗음.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 시몬의 모습에 의구심을 느낀 바렌티노스는 어찌 되었든 '유다의 복음서'는 회수했다며 아래층으로 내려감. 아직 자신이 해치워야 할 적이 이곳에 남아있음을 느낀 바렌티노스는 폭력에 대한 갈망을 숨기지 못하며 홍소(哄笑)를 지음. * 산디는 시몬으로부터의 명령도 더는 떨어지지 않고 상황 또한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낌. 그로리아의 추락으로 의욕을 잃었던 아이린을 상기함. 아이린이 그로리아에게 품었던 호적수로서의 대항심과 경의, 그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연모의 감정까지도. 모두 죽으면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것. "무명의 마녀"로부터 맡겨진 특수한 임무를 맡아온 산디는 그녀들의 반복되는 삶과 죽음을 기억함. 자매들을 공물로 바치는 행위로 피학의 윤회를 홀로 비껴간 자신. 산디 내면의 목소리는 거부하지 않았음. 산디의 앞에 캐롤이 마음을 기대는 존재 츠누가 쇼고가 나타남. * 캐롤의 정신을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는 츠누가라는 남자에 대한 산디의 기호를 늘려감. 압도적인 무력으로 츠누가를 제압하는 산디의 앞에 요저의 가닥을 두르며 끝없이 일어나는 츠누가의 모습. 산디는 요저의 본능적인 공포에 질리면서도 광란의 칼부림을 이어갔지만, 요저의 파편은 재생을 이어가 반응할 수 없는 사각에서 덮쳐 산디를 단단히 붙듦. 몇 번이나 생명체로서 죽음을 맞이해 재생한 고통을 겪은 츠누가는 이미 사람의 말을 잃은 이형의 고함만을 지를 뿐. 츠누가의 의지는 요저를 구성한 수천의 정신에 짓눌려 존재가 희미해짐. 오로지 육욕을 쫓는 신체는 산디에 대한 포학을 이어감. 목이 졸리고 사지가 한계에 달한 산디는 도축과 같이 해체되려 함. 임종의 순간. 그 눈동자는 맑게 개어, 더는 가엾은 아가씨들을 괴롭힐 것도 없이, 주에게 죄를 참회하며 의식이 사라짐. * 남은 최흉의 "마녀"의 고깃덩이는 비명과 신음만을 흘리다 완전히 파괴되어 죽음이 완료됨. 츠누가는 인간의 형태를 잃고 있었음. 입은 저 멀리 찢어져 이빨이 무수히 자라난, 의식적으로 두 발로 걸으려 해도 잘 되지 않는 신체. 피를 흘릴 때마다 어느새 누군가의 이름도 잊어 떠오르는 얼굴만을 등불로 삼음. * 츠누가의 족적을 따라 이고우는 '슬럼 빌딩' 내부까지 들어옴. 이고우가 염려했던 츠누가가 기저에 품은 폭력성은 주위에 산견한 파괴의 자국이 이어져 그의 생존을 알렸음. 이고우는 "마녀" 아리손이 눈물짓고 있는 것을 봄. 지식으로는 "마녀"의 존재를 알아도 지켜지는 것이 마땅한 소녀의 외견에 이고우는 아리손에게 여기는 위험한 장소라고 전함. 뜻밖에 아리손으로부터 츠누가의 이름을 듣게 됨. * 언제나 강한 모습을 보인 그로리아를 동경했던 아리손은, 언제나 멋있는 모습으로 있을 수 없는 스스로 자신을 갖지 못함. 유성의 모습으로 날아가는 강한 모습. 별을 동경하는 듯한 아리손에게 이고우는 닿을 수 없는 게 보통이라며 언제나 멋있을 수 있는 것은 이야기 속의 사람. 엔드 크레디트까지만 참으면 되는 녀석들 뿐이라며 우리는 밥도 먹고 대변도 하는 존재라고 말함. 인간은 설정이 정해진 캐릭터가 아니며, 남는 것은 했다, 하지 않았다의 결과뿐. 그러니까 한 번이라도 노력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며, 이상의 인간상은 알 바가 아니라고. * 그렇게 아리손에게 전해준 이고우. 행동에 나섰던 츠누가를 쫓아, 하지 않았던 자신이 여기에. 직면해야 할 것으로부터 도망쳤던 두 사람은 서로에 기대어 츠누가를 돕기 위해 함께 앞으로 나아감. ---- ||바렌티노스는 이단심문관으로서 주어진 자신의 의무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다. 교의가 구가하는 이상으로서의 인류애. 현실로서 그 편린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의 실상. 쌍방의 거대한 모순마저도. 이의를 주장하고 모순을 논하면 무력을 행사해 묻어왔다. 그 행동이야말로 폭력에 의해 처형된 성자를 신체(神体)로 한, 지고하며 야만스러운 교의의 진수라고 믿었으므로. 희생자의 피로 쓰인 교의사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렇기에 그 주먹에는 신의 비적이 머물렀다. 세계를 움직이는 인과율의 정체, 그것이 피와 폭력임을 인정한 신앙자만이 그것을 받았다. 이 권능이야말로 교의의 모순을 파괴하기 위한 절대 성전(聖典)이자 종교 병장이기에. 츠누가와 대치한 바렌티노스. 바렌티노스는 츠누가에게 스스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물었다. 이미 인간의 자취는 거의 남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츠누가. 무엇이 인간과 그 이외를 나누는지도 모른다. 다만 목적을 위해 나아갈 뿐.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향해, 이름 모를 여신을 향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도착한다. 츠누가는 돌진했다. 두 다리, 두 개 이상의 다리는 수십 개의 촉수가 보조다리로서 가속력을 주어 그 어떤 짐승보다 빨랐다. 바렌티노스는 부동자세로 요한묵시록 9장을 읊었다. '제5의 천사 나팔을 불고, 나, 한 개의 별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보거나.' '…연기의 안으로부터 황(蝗)이 지상에 나와, 땅의 전갈이 가진 힘이 주어져, 땅의 풀 전부와 푸른 것 곧 전부와 모든 수목을 해하지 말고, 이마에 신의 인(印)이 없는 사람만을 해칠 것을 명령받았거나.' '이 황의 왕이 있어. 바닥없는 나락(곳)의 심부름꾼으로서, 이름을 희백래어(히브리어)로 아바돈이라 읽고, 희랍어(그리스어)로 아포루온이라 부른다.' 메뚜기의 군세가 츠누가를 덮쳤다. 가공할 회복력의 요저의 신체도 압도적인 숫자의 황충에 뜯어먹히며 붕괴해 갔다. 바렌티노스를 당황케한 변화는 츠누가의 고뇌에 찬 신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요저의 가닥은 무수히 많은 입을 만들어내 이빨을 드러내어 황충을 모조리 잡아먹으며 상쇄해 그 몸집을 불려갔다. 바렌티노스는 격정에 찬 근육을 진동하며 사사기 15장, 천 명을 죽인 삼손의 파괴와 살육의 사적(事蹟)을 몸에 현현시켰다. 바렌티노스는 우리의 신을 의심하는 자는 대체로 같은 말을 한다며, 신이 전능하다면 왜 적이 되는 악마가 있는지, 왜 인류가 적과 아군으로 싸우는 전란이 끊이지 않는지 폭력의 희열을 느끼며 자답했다. '적'의 존재야말로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한 신의 자비. 만약 '적'이 없으면 이웃, 동포, 가족, 친구--심지어 구세주까지 죽인 인간의 본성은 곧 마음이 통하는 인간들까지도 성난 이를 들이댈 것이라고. 그러므로 인간이 아닌, 마음이 통하지 않는 절대의 '적'이 필요하다. 이도교, 이인종, 이민족. 그리고 지금의 자신에게 있어서 츠누가와 같은. 바렌티노스는 넘쳐나온 오장육부와 튀어나온 늑골, 살점을 무수한 구더기들이 이으며 불굴의 생명력을 불태우는 츠누가를 보고 아연키는커녕 넘치는 희열을 분출했다. 바렌티노스의 팔은 츠누가의 어깻죽지를 찢고 상반신을 갈라 양단했다. 츠누가는 인외의 성대를 긁어 절규를 울리며 바닥에 이물과 선혈을 튀기며 흩어졌다. 바렌티노스는 최후의 성구를 외웠다. '사법(邪法)의 짐승, 그 이마 혹은 손에 그 인을 받은 자 있다면, 필시 신의 노여움은 잔을 채우고, 불과 유황으로 인해 고통받아야만 할지니.' 황린(黄燐)의 불길이 쌍권과 함께 강타한다. 불길이 세포 하나하나를 불살라, 연소가 재생을 압도하여 더는 일어설 수도 없이 괴성과 함께 타오를 뿐인 츠누가 쇼고였던 잔재. 재로 변할 때까지 영영 꺼지지 않을 불길. 그것만이 명백할 터인데, 바렌티노스의 눈은 착각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의 모습. 불길은 다섯 개의 손가락의 형상에 의해 지워져 갔다. 괴물을 지키려는 듯, 어두운 피부를 한 이도교의 어린아이는 그것에 다가붙었다. 바렌티노스는 이교의 악령의 방해에 노여움을 참지 못하며 무구한 눈동자에 아랑곳없이 신위(神威)를 머금은 일격을 가하려 했다. 이번에야말로, 바렌티노스는 경악에 몸이 얼어붙었다. 직진하는 강권의 행방을 가리듯, 새로운 잔상이 피어오른다. 몸을 감싼 가톨릭의 검은 수도복과 가슴팍에 빛나는 십자가가 바렌티노스의 정신을 강렬하게 때려눕혔다. 죽은 수녀 역시 아이와 함께 괴물을 감싸고 있었으므로. 이 존재를 멸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투명한 시선이 고하고 있었다. 눈동자에 깃든 신앙의 빛이 진짜이기에 바렌티노스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바렌티노스는 신을 시중드는 영혼이 어째서 그 괴물을 지키는지 외쳤다. '적'으로서 가로막은 십자가의 문장에 대한 처신을 고민하던 그는, 인식을 조정해 이단으로 간주하여 재판하기로 결의했다. 그러나 바렌티노스는 비지땀을 흘리며 신음을 토했다. 죽은 수녀의 신앙이 한 치의 흐림도 없다는 것을 신도로서의 직감이 이해했기 때문이다. 악몽과 같은 이율배반의 작태에 바렌티노스는 고뇌한다. 멸해야 할 신의 '적'과, 사이에 가로막고 선 신앙의 십자가. 강철의 신념을 지닌 이단심문관의 세계에 처음으로 부조리가 생겨났다. 머뭇거리는 사이에 이형은 부정불굴의 생명력으로 부활을 이루고 있었다. 신앙의 절대성이 요동친 바렌티노스는 신의 사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평범한 남자로서 눈앞의 괴물에 공포를 느끼고 말았다. 그저 인정할 수 없다는 일념만으로, 바렌티노스는 맹목의 분노로 주먹을 달구어 성구를 입술에 담아 단련한 육체를 돌진했다. 성스러운 십자를 진 이가 자신을 막는다면 그조차도 밟고 나아갈 뿐이라며. 성명(聖名)을 찬송하며 포효하는 절규와 함께 이형과 성사쌍극(聖邪双極)의 주먹은 정면으로 충돌했다. 숙적의 섬멸을 희구한 필사의 의사와 파괴력을 실은 타격. 피아의 한편은 무르게도 부서져, 산산이 부서진 뼈와 액상화한 고기토막을 세차게 사방으로 흩트렸다. 숨을 깊게 들이쉰 바렌티노스는 눈앞의 광경에 당목했다. 부서지는 육체의 고통보다, 패배의 무념에 대해. 이형의 철퇴에 부서진 것은 주먹뿐만 아니라 바렌티노스라는 남자의 신앙이었다. 신을 위해 사사로움을 버렸던 존재의 모든 것이 독신(涜神)의 사법을 앞에 두고 쓰러졌다. 신의 이름 아래, '적'을 쳐부수는 자신의 정당성. 그것을 어디까지도 믿어 머무는 초상의 비적은 이미 주먹으로부터 사라졌다. 자신이 받드는 십자가를 공격한다는 모순을 두고, 그 왜곡을 무시하는 것은 바렌티노스의 지성과 생애의 불범을 관철하는 순결의 맹세가 용납하지 않았다. 이단심문관 바렌티노스는 지켜야 할 규범을 잃었어도 구더기로 떨어지지는 못한 채 인간으로서 패배했다. 그리하여 신이여, 저를 내버리시나이까--(에리 에리 레마 사박타니). 가상(架上)의 성자가 숨지기 전에 중얼거렸다는 원망의 주언을 흘린 채, 반신이 사라진 흑의의 거체는 피바다에 가라앉았다.|| ---- "마녀" 아리손과 이고우는 계단을 통해 38층까지 도달했다. 40층까지 연결된 엘리베이터도 발견했지만 만일을 기해 사용하지 않았다. 이고우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무수한 시체를 보아왔으나 이토록 처참한 파괴는 본 적이 없다며 상처의 원인을 파악하는 이고우. 그의 기색을 느꼈는지 흑단색의 눈시울이 조금 열렸다. '이 앞으로 가는지. 무엇을 목표로 하는가.' 이고우는 추상적인 말에 당황하면서도, 돕지 않으면 안 되는 녀석이 있다며, 어떤 일을 해서라도 가야만 한다고 돌려주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가야 하는지.' 이고우는 아들이 있다면 그 녀석처럼 기르고 싶었다고, 그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기꺼이 죽어줄 수 있다고 재차 전했다. 빈사의 이단심문관은 깊은 한숨을 토했다. 거기에 머무는 후회와 같은 무언가를 이고우는 같은 씁쓸함을 가진 남자로서 깨달았다. 이고우는 그에게 하다 남긴 일이 있지 않으냐며, 유언이 있으면 들어주겠다고 말했다. 그에게 유언은 없었다. 평생 이 길밖에 선택할 수 없으니까, 결과도 마찬가지일 테므로. 다만 마지막 힘으로 품에서 9밀리 구경의 탄환을 꺼내 떨구었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너도 그 괴물과 같은 길을 갈지. 이윽고 그 숨이 멎었다. ---- '다음'의 유체를 출산한 그로리아와 위르마. 그로리아의 비어버린 그릇은 '슬럼 빌딩' 41층으로 이송되어 여전히 희희낙락한 관람객들을 동반한 이벤트에 동원되었다. 금지된 약물, 아무리 닦아내도 지워지지 않는 거듭된 피의 향취. 이고우는 이런 광경을 처음으로 목도했다. "마녀"는 저항할 기색도 없이 강철의 롤러 사이에 끼여 고장 난 비명 레코드가 되었다. 감정 없는 압착 기계는 작동을 개시해 시간을 들여 다리부터 복부까지 피부를 늘리고 갈라져 지방이 터져 나오고 뼈가 부서져 경단이나 소시지로 비유되는 처절한 모멸을 겪고 있었다. 압사, 질식사 등 다양한 죽음으로 청중들의 고간을 만족시킬 뿐인 비참한 인형. 흉부의 한계점까지 올라간 롤러는 하강하며 다시 승강을 대비했다. 생식용 체액과 요저 세포의 혼합물은 "마녀"의 재생 능력을 극대화해 유일한 탈출구인 죽음마저 가로막았다. ||갖은 것이 으깨지는 소리. 구토하는 소리. 울음을 흘리는 소리. 자신의 자랑이던 그로리아가 부서지는 모습을 본 아리손. 이별의 때로부터 멀지도 않았는데, 한심하게 자비를 청하는 비명을 울리는 그로리아에게 한순간, 아리손은 실망--이 아닌 소중한 스승의 '적'에 대한 분노를 느꼈다. 처음으로 느낀 분노의 감정. 용기보다 격렬하고, 정의보다 강력한,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고열량의 화기. 증오와 살의가 아리손에게 싸워야 할 정당한 이유를 주었다. 목을 찌르는 절규의 아픔에 자기를 해방하는 쾌감마저 느꼈다. '철혈의 첨인'의 난무. 무장한 요원들은 군중 사이의 분란을 제지할 정도의 화력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줄 아군의 "마녀" 같은 건 더는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약체화하지 않은 만전의 "마녀"의 무력 앞에서 저항은 무의미했다. 외부에 비상사태를 타전하려는 인원을 이고우가 제지해, 글록 17의 인철을 짜넣어 자신의 몫을 챙겼다. 그 사이 장내에는 전격적인 살육이 휘몰아쳐 용서 없는 귀신의 형상만을 남기고 있었다. 아리손은 빈사의 그로리아를 구해내 안았다. 육체는 치유될 터였지만 그로리아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달해있었다. 또 한 사람의 자신을 만들어낸 "마녀"의 자아는 시간에 따라 소실한다. 그에 비례해 다음 세대의 '자신'이 눈을 뜬다. 그렇게 "마녀"는 인간의 지혜를 넘은 교대를 완수하지만 계승되지 못하고 소실하는 것도 있다. 한심한 모습을 보인 것에 미안해하는 그로리아. 이름이 불려진 데에 기뻐하는 아리손을 향해 그로리아는 고개를 옆으로 지었다. 아직은 너를 기억해낼 수 있지만, 곧 잊게 될 것이라며. 이어지지 못하고 소실되는 것은 기억. 만난 사람, 경험한 것. 그런 기억은 개개의 육체에 한정된다. 데이터를 보존할 수 없이 교체되어 사라질 뿐인 단말처럼. 기억이 사라지는 때가 바로 자신의 죽음. 남는 것은 비어버린 고기의 덩어리. 자신과 같은 얼굴을 한 "나"를 만났다고 해도, 그것은 아리손, 네가 알고 있는 "마녀" 그로리아가 아님을. 너에게 있어서의 그로리아는 지금 여기에만 있음을. 아리손은 자신의 스승은 스승뿐이라며 울먹였다. 그로리아는 아리손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아리손을 기억하는 자신으로 있을 수 있을 때, 끝내 달라고. 눈물을 흘리는 아리손에게 그로리아는 어디까지나 상냥했다. 할 수 있다는 아리손에게 그로리아는 자신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말했다. 눈을 감은 그로리아의 뺨에 아리손은 살그머니 입맞춤을 했다. 잘 자요. 스승님. 칼날은 지극히 적은 고통을 줄 것도 없이 목적에 달했다.|| 그리고, 발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고우의 입가가 이완해 담배를 떨구었다. 다가온 "마녀"를 아리손의 칼날이 통과해, 그 말이 채 닿기도 전에 머리와 동체를 분리했다. 반복되는 "마녀"의 윤회가 하나 끊어졌다. 아리손은 이고우에게 츠누가의 곁에 갈 수 없게 되었다며 사과했다. 스승과 같이 붙잡힌 동료를 돕고 싶은 마음, 거리에 있는 동료들에게 "마녀"의 비밀을 알려야 하는 사명. 그리고 여기 있는 나쁜 녀석들을 모조리 해치우러 돌아오기 위해. 이고우는 "마녀"의 존재나 비밀에 대해 자세하진 않았지만, 어른스러워진 표정의 아리손의 결의만은 이해했다. 자신이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다만, 어중간하게 하지는 않도록. 이고우는 마지막으로 전했다. 아리손은 이고우에게 쇼고 오빠를 부탁했다. 둘은 악수를 주고받은 뒤,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마녀"는 각각의 길로 헤어져 걸어갔다. ---- ||언젠가부터 창문을 통해 세계를 보는 자신을 느꼈다. "마녀"라는 창문 너머의 세계는 매우 어둡고, 위험하고, 악의가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망설이는 일은 없었다. 가야 할 길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그'는 반드시 이 거리에 돌아온다. '그'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름조차 모르는 자신은 그것만을 이해하고 있었다.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몰랐다. 그러니까, 싸우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던지는 '그'의 무기가 되어 도구가 되었다. 다가가기 위해서라면 어떤 아픔도 견뎌낼 자신도 있었다. 망설임은 없다는 것. 세상을 살아가는 단 하나의 단서. 그러니까, 문을 억지로 열고 나타난 것이 누구인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변해버린 이형의 모습이었다고 해도. 힘을 잃은 가냘픈 신체는, 그것만으로도 저항의 9할을 빼앗긴다. 피부가 울혈되어, 늑골이 격통과 함께 삐걱거림을 울려 몇 대 접힌다. 하지만 이상하게 공포만은 없었다. 무서운 요저의 촉수로 전신의 틈을 탐해져 부서지려고 하는데도. 캐롤 자신에게도 그 의미는 왜일까 모른다. 다만, 괜찮다고 무의식의 어둑한 바닥에서 '누군가'가 속삭이고 있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잃어버릴 것은 없다며.|| 츠누가 쇼고였던 존재는 인간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했다. 기형적으로 융기한 근육과 밀집한 무수한 촉수. 끝없는 기아를 상징하는 거대한 입. 눈과 귀는 사라져, 전두엽에 스친 잔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연히 빛나는 여신이며 어머니이며 여행의 끝 성지. 캐롤의 핏줄과 힘줄이 뼈로부터 분리되고 부드러운 안구가 물결쳤다. 귀와 손가락 조각이 흘러내렸으나 괴물은 한 조각도 남기지 않았다. 뼈와 머리칼마저도 늘어선 송곳니가 씹어 삼켰다. '슬럼 빌딩' 최상층에 최후의 순례자가 당도했다. 이고우는 형언할 수 없는 괴물을 향해 반사적으로 글록을 뽑아 발포했다. 탄창은 바닥을 드러내었으나 괴물에게 상처하나 남기지 못했다. 사고가 미친 것은 그 탄환. 슬라이드가 후퇴해 내부가 개방되어 수동으로 탄환을 넣어 슬라이드 스톱을 해제했다. 그것이 바티칸의 암흑 아래에서 단조된 성유물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고, 떠올려야 할 순간도 아니었다. 괴물은 쓰러지고 요저의 세포는 사멸을 시작했다. 이고우는 총을 내던져 무아지경으로 달려들었다. 츠누가는 신음하여 옛 상사에게 허약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라며, 소중한 사람을 이 손으로 죽여 삼켜버렸다는 무서운 꿈을 보았다고. 꿈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브라이언과의 사투에서 죽음이 확정된 육체는 잠식한 요저 조직으로 이어온 임시 생명 활동을 멈추었다. 츠누가의 표정은 고뇌하는 이고우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온화했다. 그를 돕기 위해 왔던 이고우는 몸에서 힘이 빠졌다. 도상에서 횡사해버린 츠누가의 죽음. 이고우의 시선에서, 7년 전의 사건을 획책한 자들을 단죄하지도 못한 지금의 결말은 개죽음일 뿐이었다. 어느새 츠누가의 망해는 통곡하는 이고우의 품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무명의 마녀"는 츠누가 쇼고와 "마녀" 캐롤의 기구한 여로를 지켜보았다. 서로를 생각해 최악의 결말을 맞은 그 운명. 마녀는 마음속으로부터 연민을 표하면서도, 연기투의 어조로 일우의 희열을 표현하기를 주저치 않았다. 그를 계속 지켜봐 온 보람이 있었다. 츠누가와 캐롤이 만난 '우연'에 마녀는 건배를 올렸다. 심연의 소우주로부터 측량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 활동을 마도의 예지와 술리(術理)로 가시화하여 작용하는 힘으로 바꾼다. 우주의 법칙을 고쳐 쓰는 신에게도 닿을 위업. 모형 정원에서 몇 번이고 환생하는 26명의 "마녀"들의 되풀이되는 절망의 고통을 책형에 처박힌 자신의 몸에 회수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버리는 "마녀"와는 달리, 인간적인 희망을 품었을 캐롤의 뒤집힌 절망은 마녀의 대망에 성취의 쐐기를 박기에 충분할 터였다. 줄곧 그를 생각하다가 그에게 죽임을 당한 그녀. 당신과 같은 비극은 아가페로 가득 찬 이상향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마녀의 어전에 마지막 공물인 캐롤의 영혼이 피와 살을 입은 채로 떠올라 있었다. 그녀의 육신은 츠누가 쇼고의 육체를 심연으로 퍼내 다시 빚은 것이었다. 쌍방의 영혼은 명멸하며 동기를 시작했다.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상정외의 사태에 마녀는 내부에 들어온 이물을 소거하려 했으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자아가 있을 리 없는 잔류 사념의 망령은 아르스 마그나의 섬세한 톱니바퀴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렇기에, "마녀" 캐롤은 이전의 캐롤과는 다른 무언가라고 마녀는 깨달았다. 캐롤이라 불렸던 "마녀". 그리고 다른 누군가. 석류색의 눈동자가 뜨였다. 신의 자리를 찬탈하려는 자의 노여움에도 불구하고 캐롤은 말문을 이어갔다. 그것은 자신의 희망. 끌어안은 기도가 보답받은 축복의 노래. 결코 한탄이 아니었음을.|| ---- ||츠누가 쇼고는 선잠과 각성의 사이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태아를 감도는 양수와도 같이 모든 것을 긍정해주는 평온한 공간 안. 타인의 존재는 태어난 이후의 세계임을 짐작게 했다. 츠누가는 눈을 떠 예상했던 상대의 모습을 찾아냈다. 츠누가는 만남의 처음부터 상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날 만한 어떤 이유의 존재를 깨닫고 있었다. 캐롤은 수긍했다. 우연이 아니라, 스스로 츠누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과 함께. 7년간, 닫힌 인과의 고리로 츠누가가 돌아오기 전까지 모습을 취한 적이 없었던 캐롤. 츠누가는 캐롤의 대답에 놀라움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녀를 원해 하나가 된 것으로, 믿고 이해하는데에 무리는 없었다. 츠누가는 캐롤이 누구인지 가르쳐주기를 원했다. 츠누가가 걸어온 7년간의 유혈과 방황의 여로에 내려질 대답. 이미 알고 있었을, 츠누가의 뇌리에 스치던 악몽의 진상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의 신념이 무너져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죽음을 맞이한 정경. 의식의 초점이 맞추어지고 피투성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츠누가는 이것이 7년 전의 진실된 기억임을 이해했다. 어떤 보정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안구가 비어 그림자가 진 소녀의 안와가 그를 올려다보며 찢어진 입술을 움직였다. "■■■■■--" 그것은, 츠누가의 영혼에 새겨진 저주의 말. "ありがとう--" 그녀는 확실히, 그렇게 고하고 있었다. 절망의 원망 같은 것이 아니라, 누구도 잘못 들을 리 없는 진심 어린 감사. 상처받고, 빼앗기고, 살아있으며 겪는 지옥 안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토우코의 기원에 누군가가 응했다. 생명이 끝나는 순간에, 자신이 믿고 싶었던 세상의, 인간의, 이상의 윤곽을 믿게 해준 누군가. 그것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구세주에게 바쳐진 말이었다. 어안이 벙벙한 츠누가. 자신이 알았던 것은 증오와 절망의 저주, 무력함과 지옥의 고통을 잡아 늘인 위선을 탓하는 단말마의 신음. 그런 있을 수 없는 착각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이 세상에 있는 예쁜 것, 아름다운 것. 그것을 거짓으로 만드는 건 언제나 우리 쪽. 그런 토우코의 말. 지옥의 안에서 절망에 물든 쪽은 츠누가 그 자신. 그의 내면이 들려준 목소리였다. 아름답고 바른 인간의 모습. 선의, 용기, 사랑, 상호이해. 그런 예쁜 것은, 그것을 믿을 수 있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가진 마음의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어둠에 가라앉은 인간에게는, 선의도 날붙이나 독으로서 닿아버린다. 그런 세상에 흔히 있는 어긋남 하나가, 츠누가에게도 일어났다는 이야기. 츠누가 쇼고는 누군가를 구했다. 그 지옥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구했다. 겨우, 이 말을 전했다는 토우코. 츠누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카네무라 토우코--캐롤의 구원임과 동시에, 고독한 살육자에 대한 보답. 터무니없는 지옥에 도전한 자신들의 투쟁은 무의미하지 않았다. 한 소녀가 품은 작고 아름다운 세상만은 지켜낼 수 있었다.|| ---- ||심연에 붙잡힌 사지 잃은 신체. 안면에 가시관을 둘러 피눈물을 떨구는 "무명의 마녀"의 본 모습은, 일그러진 얼굴에 노골적인 불쾌함을 숨기지 못했다. 그런 초라한 희망 따위 필요치 않다. 도대체 왜 멋대로 구하거나 구해지거나 하는 것인지. 구하는 것은 나라고 분명히 일렀는데. 자신의 절대애--아가페 만이, 의심할 혐의 한점 걸치지 않은 참된 지고의 인류애. 나머지는 뇌수가 분비하는 쾌감 물질에 만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성욕의 미화, 자가중독에 빠진 주정꾼의 착각. "무명의 마녀"는 7년에 걸쳐 축적된 몇십만의 죽음의 고통과 굴욕, 비탄을 '회수용 그릇'에 역류시켰다. 그것은 설령, 일부라 할지라도 초인인 마녀 이외의 자가 견딜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일부를 직격한 것만으로도 목이 꺾이고, 흉부가 조각나, 보이지 않는 불길은 내장을 구워 몸의 틈새로 증기를 발한다. 팔다리조차 온전함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현격한 축척의 규모로 비화한 응축된 절망은, 보통의 인간이 품은 희망 따위는 덮어버리고도 셀 수 없는 남음이 있었다. 캐롤의 전신에 무수한 상처가 달리며 견딜 수 없는 출혈로 울컥거렸다. 언어를 초월한 격통과 악의가 그 영혼을 유린하고 지워 날려 보낸다. 마녀 본인이 몸에 받아내온, 이것의 몇만을 곱한 부정의 힘은 그녀가 가진 진실된 초인적 정신력의 무서움을 증명하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 예수가 그 허물로 살해당했음을 알라며 마녀는 분수를 운운했다. 인지와 천리의 가장 깊은 곳을 탐구한 현인신이자, 세계에 왕으로서 군림하는 권능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로서. 그렇기에, 여기서 왕을 찌르는 것은 옥좌 뒤에 숨은 어릿광대의 역이었다.|| ---- ||이단심문관에게 무저항인 채 쓰러졌던 시몬. 죽음을 맞이하기 전, 미리 몸에 베풀어진 법술과 의식의 갖가지는 "마녀"들과 같이 혼백이 되어 최후의 마녀와 융합하는 목적을 완수했다. 물질세계의 육체 따위 더는 필요치도 않았기에 버렸을 뿐. 이레귤러인 "마녀" 캐롤의 존재와 반역은, 완전무결한 세계에 구멍을 뚫어 시몬의 침입을 불러일으켰다. 무엇보다도, '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거라는 점을 지적하며 시몬은 자조의 쓴웃음을 띄웠다. 장미의 가시관을 쓴 소녀는 혼백화한 시몬에게 물리적으로 구속되었다. 반역이라 외치며 분노하는 팔다리 없는 형상에게, 시몬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저 세상의 끝까지 함께 있고 싶을 뿐. 그런 시몬을, 마녀는 불가해한 미친 자 보듯 내려다봤다. 무엇을 위해서? 시몬은 그녀가 말했던 뇌의 착각이라 받아쳤다. 오십 년이나 깨어주지 않는 중증 중독이라고. 마녀의 시선에 처음으로 공포의 색이 떠올랐다. 더럽다. 무섭다. 기분 나쁘다. 온몸과 영혼을 다해 거절의 의사를 떨치지만, 심연이라는 마술적 공간에 스스로 고정한 마녀에게 탈출은 불가능하다. 혼백인 장미의 소녀상을 억제당하는 한 물질세계로 돌아갈 수도 없다. 시몬은 모든 비원을 성취했다. 그 표정에는 환희가 아니라, 단념의 적막이 떠올라 있었다. 한 사람의 남자로서 받아들여 주었으면 했던 벌거숭이의 남자. 그것이 영원히 무리라고 한다면, 단념해야 좋으냐며. 시몬은 코웃음 친 뒤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단념을 할 수가 없다고. 구질구질한 꼴불견의 기분을 사랑이란 예쁜 말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고. 제멋대로의 욕망일 뿐. 그것을 알고서 저지른 일. 거기 누나, 아니 두 분인가? 시몬은 캐롤에게 흥미 얇은 시선을 떨어뜨렸다. 지금부터 여기는 내가 닫는다. 영원히. 나와 스승이 오붓하게 지낼 테니, 다 나가 주시라고. 배신자. 망은의 패거리.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미친 듯이 절규하는 마녀. 그러나, 이 상황이 역전되는 일은 없다. 절대 깨어지지 않을 마도는 법리로서 견고하기에, 규칙을 넘어 장군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중년의 남자는 내가 나빴네. 다 물거품으로 만들어서. 라며 소년의 주절거림을 늘어놓았다. 그 뇌리에 스치는 것은 내일 없는 나날을 보낸 빈곤과 부패의 고향 풍경. 색채 없는 닫힌 세계. 나타난 그녀가 말하는 기개가 장대한 야망은 소년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태양만을 옆에서 보고 있자면 그 밖에 보이지 않게 된다며. 남자는 인간으로서의 모든 것을 교환해, 한 마리의 구더기로 전락할 어두운 각오만이 남았다.|| ---- ||캐롤은 이별의 순간이 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최후의 마녀에 의해 재구성된 육체라는 그릇은 하나뿐. 그러나, 그곳에 깃든 영혼은 둘이었다. 사라지는 쪽은 자신. 스스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츠누가의 영혼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너도 알 거라며. 캐롤은 수긍해 복부에 싹트기 시작한 기색에 의식을 폈다. 아직 혼백을 아우르는 하나의 생명으로 부를 수는 없지만, 츠누가와의 사이에서 탄생한 결정임은 틀림없었다. 당신의 아이가, 여기에 있어. | 그 말 대로다. 그럼, 부탁한다. 침묵한 캐롤. 어느 때보다 당황한 듯한 츠누가의 반응은 불만인 듯한 캐롤의 안색을 살폈기 때문인가. 끝까지 필요한 말만 하는 그에게, 캐롤은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눈물을 견디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 그 강한 감정은 츠누가가 모르는 캐롤의 것이었다. 붙여 넣어진 토우코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싸우면서, 그를 위해 살다가 죽을 것을 진심으로 생각했음을. 쇼고를 사랑하고 있다고. 츠누가는 끝까지 사랑이란 말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다만, 마천의 심연으로 떠난 두 사람을 보며 느낀 것을 이야기했다. 추악하리만큼 드러난 시몬의 아욕과 망집. 전능자로서 사심 없는 마녀의 인류적 박애. 세상에 마지막에 남는 것은 말보다도, 강한 사념을 실은 행위. 고결한 이상도 단순한 욕망에 져버린 것처럼. 그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녀에게 무엇을 느껴왔는지는, 그의 발자국이 알려줄 것이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언제라도. 말을 끊고, 츠누가는 파트너의 얼굴을 곧바로 바라보았다. 정말로 말해야만 하는 것이 남아 있었다. 네가 없었다면, 나는 끝까지 싸워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도착할 수 없었다. 캐롤. 너는, 이 세상에서 찾아낸 나의 반신이었다. 말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은 분명,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캐롤은 생각했다. 말없이 흘러가는 남겨진 시간 속에서, 남자와 여자는 영원한 이별을 했다. 적멸의 여운을 곱씹으며, 일찍이 츠누가 쇼고라는 남자가 살았던 세계에 캐롤은 홀로 귀환한다.|| ---- ||한때 관동사법가로 불린 무법지대는, 그 후 수년을 거쳐 일본 국토에 복귀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상공에 펼쳐져 있던 심연이라 불린 이공간 및, "재화의 마녀"라 칭해지던 초상적 존재의 소실이다. 현대 병기를 치아 하나 박히지 않는 무력을 자랑하던 여성형 재해들은, 그것이 찾아온 심연 저편으로 돌아갔다고 여겨진다. 한편으로는, 요저라 불린 괴생물은 그 후에도 출몰이 확인되어 주변 피해가 보고되었다. 이전과는 달리, 구 사법가를 중심으로 한 일정 범위의 밖에도 이동이 가능하게 된 모양이다. 그 사실로부터, 그 요저와 대등한 존재였던 "마녀"들은 과연 심연으로 돌아간 것이 맞는지에 관한 논의가 오가게 된다. 그것은 합리적인 의심이었다. "마녀"들은 떠나지 않고, 이 세계에 남아있었다.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에, 가장 어린 외모를 가진 개체에 이끌린 "재화의 마녀" 집단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목적은 당초 불명이었지만, 반드시 쌍방의 군세를 평등하게 괴멸시키는 것, 리더격의 개체의 반복된 발언으로부터, 아무래도 "마녀"에 의한 무력 개입으로 '세계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 이념인 것 같다. 다만 그 행동양식과 '결정 대사'를 통해, 재패니메이션의 강한 영향이 느껴진다고 하는 분석 결과가 지식 계층에게서 나오고 있다. 현실 세계의 정치정세를 일절 고려하지 않은 야만스럽고 유치한 행동 이념과 지상 최강의 무력과의 융합으로 인해, 그 존재는 각국 정상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관동사법가 이후의 세계가 직면한, 두려워해야 할 새로운 천재지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약간 소란스럽고 뒤숭숭해졌지만, 여전히 역사의 변화의 나날을 의연히 새겨 이어가고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삶과 함께. 이고우 노부타케는 신록의 계절을 맞아, '딸'과 '손자'를 태운 승용차를 북쪽으로 향했다. 도착한 앞은, 카죠우 현립 자연공원. 현지에 도착한 후에는, 백합꽃이 흐드러진 고지의 산들바람을 맞으며, 어느 장소를 향해 걷는다. 나무에 둘러싸인 숲의 안쪽. 전망이 좋은 초록의 초원에 가로놓인 비석은, 이고우 개인에 의한 기증품의 명목으로 놓인 미술품이라는 취급이었다. 그러나. 여기를 방문한 이고우와 그의 '딸'에게 있어서, 이것은 이름이 없는 묘비였다. 몇 번째 금연에 실패한 이고우는 변함없이 골초였지만, 옆의 '딸'이 안은 갓난아기 앞, 입이 심심함을 참고 있었다. 이고우 가의 양녀로서 일본 국적을 취득한 캐롤은, 이미 "마녀"는 아니다. 그 육체는 의학적으로, 완전한 인간임이 증명되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어쩌면 심연에서 마녀에 의해 재탄(再誕)을 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잡아 먹히는 것으로 물질적으로 소멸한 캐롤의 육체는, 인간인 츠누가의 세포를 사용해 재구축 되었으니까. 일찍이 캐롤로 불린 아가씨는, 그 최후의 마녀가 꿈꾼 세계를 생각했다. 모든 것을 기도한 마녀가 몽상했던, 사랑의 세계. 계획이 무너진 이상, 그것은 결국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계는, 오늘도 비뚤어지고 불완전한 채. 마녀가 한탄한 것처럼, 사랑에 따라서 움직이지는 않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신은, 사랑이라는 것의 실재를 믿을 수 있다. 두 가지의 사항에 의해. 캐롤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나는, 아직도 심연의 소우주를 방황하는 그 남녀의 존재였다. 진저리 처질 정도의 인간의 업으로 가득 찬, 그 결말. 저것은 틀림없이, 사랑이라고 하는 정신 활동이 사람을 내달리게 한끝에 이르는 하나의 북쪽 극점일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그것은 캐롤에게 있어, 무엇보다 자명한 증거였다. 팔 안에서 건강하게 숨소리를 내는, 사랑한 남자에게 받은 인생의 결정. 자는 그 얼굴보다 웅변하는 것은,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아직 먼 초여름의 정취. 그것을 희미하게 옮기는 초록의 바람이, 부드럽고 덧없는 그 뺨을 어루만져 간다. 잎사귀 사이로 비치는 햇빛 아래 선잠의 그 꿈속까지 닿도록, 어머니의 입술이 부드러운 가락을 흥얼거려갔다. 그것은, 태어난 생명을 기리는 축복의 노래가 되어 세계에 흘러나왔다. 바람에 불려서. (風に吹かれて。)||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26px" {{{#!folding 엔드 크레디트 [ 펼치기 · 접기 ] [youtube(q2hToJjCn78,width=100%)] }}}}}}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